반도체가 꺾인 홍콩 증시, 지금 돈이 머무는 테마는 어디일까
홍콩 증시에서 반도체주의 낙폭이 유독 큽니다. 지난 9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20거래일 동안 화홍반도체는 31.6%, SMIC는 18.1% 내렸습니다. 같은 기간 홍콩 상장 소비재 종목 15개 가운데 11개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반도체가 쉬는 사이 시장의 관심이 어디로 옮겨 가는지, 가격 데이터와 최근 시황에서 확인되는 흐름만 추려 봤습니다.
반도체 약세, 숫자로 보면 어느 정도인가
섹터별 성적표
아래 표는 홍콩 상장 주요 종목을 섹터별로 묶어 10월 15일 종가 기준 수익률의 중앙값(종목을 줄 세웠을 때 가운데 값)을 계산한 결과입니다. 평균 대신 중앙값을 쓴 이유는 한두 종목의 급등락이 섹터 전체 인상을 왜곡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섹터 | 종목 수 | 5거래일 | 20거래일 | 20일간 오른 종목 |
|---|---|---|---|---|
| 소비재/음식료 | 15 | +2.8% | +4.3% | 11개 |
| 은행/금융 | 9 | +2.2% | +3.0% | 6개 |
| 통신/배당주 | 3 | +2.0% | +2.1% | 2개 |
| 부동산/건설 | 4 | -4.6% | +3.4% | 3개 |
| 플랫폼/인터넷 | 6 | +1.9% | -2.3% | 2개 |
| 헬스케어/바이오 | 23 | -4.5% | -2.5% | 10개 |
| AI/SW/클라우드 | 20 | -0.5% | -5.7% | 4개 |
| 로봇/피지컬AI | 9 | -8.3% | -18.5% | 0개 |
| 반도체/전자부품/HW | 11 | -15.4% | -18.1% | 0개 |
반도체와 로봇 섹터는 20거래일 동안 오른 종목이 하나도 없습니다. 반대로 소비재와 은행, 통신은 크지 않지만 꾸준한 플러스입니다. 성장 기대가 컸던 기술 하드웨어에서 돈이 빠지고, 실적이 눈에 보이는 내수·배당 쪽으로 무게가 옮겨 간 모습입니다.
약세의 배경
10월 14일 시황에서 원인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미국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이자 그 여파로 본토 A주의 반도체·PCB(인쇄회로기판) 종목이 밀렸고, 선전성분지수는 1.97% 하락했습니다. 같은 날 중국의 9월 수출이 36.3%, 수입이 31% 늘었다는 지표가 나오면서 항셍지수는 장 초반 낙폭을 상당 부분 줄여 0.13% 하락으로 마감했습니다. 무역 지표는 좋았지만 반도체만큼은 미국발 부담을 피하지 못한 셈입니다. 같은 기술 테마 안에서도 하드웨어와 플랫폼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이번 장세의 특징입니다.
홍콩 반도체 섹터의 낙폭을 키운 건 최근 상장한 AI 칩 설계 회사들입니다. 톈수즈신은 20거래일 동안 32.1%, 비런테크놀로지는 24.0% 내렸습니다. 이런 종목은 아직 이익보다 미래 성장 기대로 가격이 매겨집니다. 기대가 꺾이는 순간 받쳐 줄 실적이 없어서 하락 폭이 대형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보다 커지기 쉽습니다. SMIC의 낙폭이 이들보다 작았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상대적으로 버틴 테마들
소비재: 넓게 오르되 종목 차이는 큽니다
소비재가 눈에 띄는 이유는 상승 폭보다 상승의 폭넓음에 있습니다. 15개 중 11개가 20거래일 동안 올랐다는 건 특정 테마주 하나가 끌어올린 장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같은 소비재 안에서도 성격에 따라 결과는 갈렸습니다.
| 종목 | 5거래일 | 20거래일 |
|---|---|---|
| 미니소 | +15.6% | +18.0% |
| 신주국제 | +8.7% | +8.5% |
| 탑스포츠 | +1.5% | +8.3% |
| 화윤맥주 | +3.8% | +7.8% |
| 팝마트 | -4.6% | -4.7% |
| 라오푸골드 | -3.0% | -16.8% |
미니소는 10월 12일과 14일 연이어 상승률 상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스포츠웨어 제조사 신주국제와 맥주 회사 화윤맥주처럼 생활 소비와 맞닿은 종목도 고르게 올랐습니다. 반면 한때 화제를 모았던 팝마트와 금 장신구 브랜드 라오푸골드는 하락했습니다. 이미 기대가 많이 반영된 인기 브랜드보다 생활 밀착형 소비주 쪽이 이번 구간에서는 더 나았습니다.
소비재가 오른 직접적인 이유를 한 가지 뉴스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확인된 자료 범위에서 개별 종목의 상승 촉매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구조적으로 보면 내수 소비주는 미국 반도체 경기나 수출 규제와 연결 고리가 약합니다. 기술주가 외부 충격에 흔들릴 때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자산으로 돈이 옮겨 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래서 이 상승을 소비 경기 회복의 증거로 단정하기보다는, 일단 상대적 피난처 성격이 강하다고 해석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플랫폼: 규제 이슈가 오히려 호재로 읽혔습니다
플랫폼 섹터는 20거래일로 보면 아직 마이너스지만, 최근 5거래일은 반등했습니다. 계기는 정책입니다. 상무부 등 7개 부처가 '자동 최저가 매칭'과 '전 인터넷 최저가' 관행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고, 시장은 이를 출혈 보조금 경쟁이 줄어드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10월 14일 하루에만 메이투안이 6.64%, 알리바바가 3.08% 올랐고, 샤오미도 5.35% 상승하며 항셍테크지수를 0.91% 끌어올렸습니다. 같은 날 항셍지수가 소폭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기술주 안에서 돈이 하드웨어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한 하루였습니다.
이 흐름의 핵심은 매출 성장보다 비용 부담 완화입니다. 배달·전자상거래 업체들은 그동안 점유율 경쟁에 쓴 보조금이 마진(매출에서 비용을 뺀 이익의 비율)을 깎아 왔습니다. 경쟁 완화가 실제 분기 실적에서 이익률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가는 그 기대를 앞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은행·통신: 조용하지만 꾸준합니다
농업은행은 20거래일 동안 6.9%, 교통은행은 6.1%, 초상은행은 5.1% 올랐습니다. 차이나텔레콤도 4.3% 상승했습니다. 이들 종목은 성장 테마라기보다 배당수익률(주가 대비 연간 배당금 비율)을 보고 사는 자산에 가깝습니다. 기술주 변동성이 커질 때 피난처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흐름입니다. 대형 국유은행과 통신사는 이익 변동이 작고 배당 정책이 비교적 예측 가능해서, 성장주에서 빠진 자금이 잠시 머물기 좋은 곳입니다. 같은 금융권이어도 중신증권(-5.6%)과 홍콩거래소(-6.1%)는 내렸습니다. 거래대금에 실적이 연동되는 증권·거래소는 은행과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부동산·건설도 표만 보면 20거래일 중앙값이 +3.4%로 양호합니다. 하지만 종목 수가 4개로 적고 내용도 엇갈립니다. 국유 개발사인 중국해외발전(+8.0%)과 화윤치지(+4.4%)는 올랐고, 뉴월드개발은 15.2% 내렸습니다. 최근 5거래일로는 섹터 전체가 4.6% 밀렸습니다. 재무 체력이 탄탄한 국유 개발사 위주의 선별적 반등일 뿐, 섹터 전반의 회복이라고 부르기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주목도는 높지만 아직 흔들리는 테마
로봇·피지컬AI
로봇은 뉴스와 거래량 순위에 자주 오르는 테마입니다. 하지만 가격으로는 반도체만큼 약했습니다. 화옌로보틱스는 20거래일 동안 40.4%, 시어로보틱스는 28.0% 내렸습니다. 윈지테크놀로지는 10월 9일 하루 26.15%, 12일 18.56% 급등했다가 14일에는 9.92% 떨어졌습니다. 하루 변동이 이 정도로 크다면 실적보다는 수급과 기대감이 가격을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휴머노이드와 물류 로봇처럼 이야기가 큰 산업일수록 상용화 일정과 수주 실적이 확인되기 전까지 이런 등락이 반복됩니다. 자주 화제가 된다는 사실이 곧 지금 사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AI 소프트웨어와 바이오
AI 섹터 안에서도 명암이 뚜렷합니다. 넷이즈(+5.0%)와 킹소프트(+5.7%)처럼 게임·오피스 소프트웨어로 이미 돈을 버는 회사는 20거래일 동안 올랐습니다. 대형 언어모델을 앞세워 상장한 지푸AI(-28.7%)와 미니맥스(-24.6%)는 큰 폭으로 밀렸습니다. 같은 'AI'라는 이름표를 달아도 시장은 현재 수익 구조가 있는지를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델 개발에 드는 연산 비용이 큰 회사일수록 반도체 경기와 마찬가지로 금리와 투자심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바이오는 섹터 중앙값이 -2.5%로 표면상 무난해 보이지만 속은 거칩니다. 캔시노바이오는 20거래일 기준 17.7% 올랐지만 최근 5거래일만 보면 17.1% 빠졌습니다. 10월 14일에는 아케소가 9.62%, 이노벤트바이오가 4.19% 하락했습니다. 신약 개발사 주가는 임상 결과와 기술수출 소식에 따라 하루에도 크게 움직입니다. 섹터 전체를 하나의 테마로 묶어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책·매크로 변수와 밸류에이션 점검
다음 주 이후 확인할 일정
가까운 변수는 10월 19일 열리는 금융가포럼입니다. 우칭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기조연설을 합니다. 시장은 첨단 제조·기술 혁신을 뜻하는 '신질생산력' 관련 기업의 상장과 자금 조달 지원이 제도로 구체화되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술주 투자심리를 되살릴 재료가 될 수 있지만 발표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지원책이 나오면 이번에 크게 밀린 AI 칩·로봇 종목의 반응이 먼저 관심을 받을 것입니다. 원론적인 언급에 그치면 소비재·배당주 중심의 흐름이 조금 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동차 쪽은 변수가 엇갈립니다. 신에너지차 수출 환급률 인하 소식 속에 CATL은 10월 14일 3.75% 내렸고, 20거래일 기준으로는 10.5% 하락했습니다. 반면 샤오미는 최근 5거래일 동안 14.5% 반등했습니다. 중국과 EU 사이의 하이브리드차·전기차 무역 합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수출 쿼터 세부안이 비야디와 지리자동차 같은 완성차 업체에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오른 테마일수록 가격을 먼저 보세요
반도체가 약할 때 대안 테마로 돈이 몰리면, 그 테마의 밸류에이션(이익이나 자산 대비 주가 수준)이 빠르게 높아집니다. 미니소처럼 한 달 사이 18% 오른 종목은 PER(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이 그만큼 올라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분석에서는 종목별 PER 수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주가가 오른 만큼 이익 전망도 함께 올라왔는지, 최근 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직접 대조해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대안 테마로 늦게 들어가면 반도체에서 피한 위험을 다른 곳에서 다시 떠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화홍반도체처럼 한 달 새 30% 넘게 빠진 반도체 종목이 이미 나왔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만합니다. 지금의 테마 이동이 추세 전환인지, 미국 반도체주 약세에 따른 일시적 쏠림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미국 반도체 지수가 안정되면 자금이 다시 기술 하드웨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경우 소비재와 배당주의 상대 강세는 금방 약해집니다.
당장 확인할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0월 19일 금융가포럼에서 기술기업 상장·자금 지원책이 실제 제도로 나오는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분기 실적에서 메이투안·알리바바의 보조금 비용이 정말 줄었는지입니다. 이 두 가지가 확인되면 지금의 테마 이동이 단기 피난인지, 한동안 이어질 흐름인지 훨씬 선명해집니다.